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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사랑한다면

미루나무 지음로망띠끄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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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었다. 작년 식목일에 부부가 같이 심은 포도나무 잎사귀가 햇볕을 받아 싱그럽게 빛나던 오후였다.
“나 임신했어요. 하지만 당신 아인 아니에요.”
조성미의 말에 종완과 세영의 삶이 바뀌었다. 세영은 늘 조성미의 저 말이 너무 평범해 지루하기까지 하던 삶의 한구석에 숨어 있던, 그야말로 심장을 멎게 만드는 반전이라 생각했다.
종완은 그때도 변함없이 무뚝뚝했지만 건실한 가장이었다. 조성미 역시 얌전하게 살림 잘하던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 월급과 외동딸 교육만이 관심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던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애를 밴 채 집을 떠났다.
“하긴…… 제정신으로 버티는 게 이상할 노릇이지.”
배신감, 분노, 수치심, 절망…….
“15년 동안 살을 맞대고 자식 낳고 살던 여자가 그렇게 뒤통수를 쳤는데. 나라도 별순 없었을 거야.”
세영의 목소리는 더없이 건조했다.
“죽여 버린다고 몰던 차에 치인 건 나였고, 다리를 절단한 건 당신이었으니까.”
반듯하던 삶이 중심을 잃고 뒤집히는 건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평온한 일상을 지루하다 생각했던 오만에 대한 벌인지도 몰랐다.
“그래…… 제정신인 게 더 이상하긴 하겠다.”
혜준은 불안했다. 세영은 손을 대면 퍼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너질 고목 같았다. 차라리 맞아서 살이 찢어지고도 웃어 부아를 지르던 오세영이 나았다.
“그만 해. 그만 하고 좀 자, 응?”
밤 12시가 넘었다.
“사람들 말이 배 째고 들어오냐? 뭐, 소문이 난들 네가 천하의 오세영인데, 누가 입방아 찧긴 한대?”
일부러 기운차게 쾌활하게 이야기를 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영은 심각하게 지쳐 있었다.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한 뒤 남은 것은 허탈함이었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지겨워하면 안 되는데…… 지겨워해서 이미 한 번 벌을 받았는데.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또 지겹다.”
아휴, 지겹지! 곁에서 보는 내가 이렇게 미치고 팔딱 뛰게 지겨운데 당사자인 넌 오죽하겠냐! 혜준은 목구멍까지 치받은 그 말을 애써 삼켰다.
“……나는 모르겠어.”
서서히 세영의 눈이 감겨들었다. 몽유 속으로 들어가 오늘의 일은 모두 잊었으면 좋겠다. 잊어야 살 수 있으니까……. 혜준은 한숨을 쉬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다 여며 주었다.

잠이 깬 것은 본능이었다. 기계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오세영 씨 되십니까? 여기 인천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오종완 씨 보호자 맞으시죠?
시끄러운 말소리가 섞인 전화 음성에도 몽롱하던 정신이 오종완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맑아졌다.
“네, 저 맞습니다.”
-오종완 씨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이 필요합니다. 같이 오신 분은 아버님과 함께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 쇼크 상태에 빠져서 안정제를 투여했습니다.
법적 보호자의 사인이 없으면 수술은 시작되지 않는다. 종완이 죽을지도 모른다.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세영의 손이 떨렸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간호사가 내미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종완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번엔 늘 시늉만 하던 발작 때와는 달리 맨 정신으로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비장했던 종완에게 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과다 출혈로 쇼크 상태에 빠지기 전 종희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종완에게서 빠져나온 많은 피에 놀란 종희도 급기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다행인 건 두 사람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단다.
그 말에 긴장이 풀리자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비틀거리다 복도 한 켠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에 앉았다.
종완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직인 건 본능이었다. 재고 따질 틈이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가족. 지긋지긋한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절대적이었다.
후훗.
참지 못하고 희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정신을 차려 보면 언제나 이 자리였다. 차라리 도망치겠다고 용이나 쓰지 말던지.
하하하.


정경하



행복한 이야기에 즐거워하는 사람.



출간작


<기억1,2><인연><수박밭에서 만나다><사랑초><섹시 레이디><그 길의 끝에서><두근두근><사랑한다면><서슬><사랑에 미쳐1.2><당신의 연인><당신의 천사><모란1,2><그 밤이 지난 뒤에 1,2><이 길 건너 당신에게><낯선 남자><느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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